💌 일곱 번째 편지,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

안녕, 친구!

이번 주는 약간 날씨가 종잡을 수 없었지 않아? 어느 날은 조금 춥게, 어느 날은 조금 덥게 입고 나와서 옷차림 선택이 후회되는 날이 많았던 한 주였어.

그런데 혹시 인생에 있어서 후회하는 일이 있니?

난 최근,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피부로 느낄 만한 일이 있었어. 사건의 발단은 바야흐로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NA와 RA 사이를 띄어 쓸까요?”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었지.

“아? 아... 네.” 그렇게 아주 짧은 찰나에 난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을 저질렀어.

당시 22살이었던 나는 미국인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그의 초대를 받아 학기가 끝나자마자 그가 있는 LA에 갈 예정이었어. 어렸을 때 딱 한 번 걸스카웃 활동으로 일본에 다녀왔던 때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해외를 나가는 것이었던 터라, 여권을 새로 발급받아야 했는데, 그때 창구에서 담당해주시던 공무원분께서 내 영문 이름 표기에 대해 질문을 하신 거야. 난 뜻밖의 질문에 당황했지만 ‘다들 많이 띄어서 쓰기 때문에 물어보시는가보다…’하며 “네”라고 대답했고, 그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나를 영원한 고통으로 이끌었어 😂

다들 알겠지만, 공적 서류를 위해서 여권 영문명을 그대로 기재해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잖아. 그래서 그 한 번의 잘못된 대답으로 하여금 모든 서류상 내 영문명은 “NA RA YOON”이 되었어. 문제는 미들 네임을 사용하는 나라의 경우, 내 이름을 “윤나”로, “라”는 미들네임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거야. 다행히 아직 그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가능성 있는 일이어서 해외 여행을 할 때마다 괜히 걱정되곤 해. 그리고 서류에 여권 영문명을 기재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많이, 자주 있더라. 게다가 종종 웹사이트 특성상 키보드에서 띄어쓰기가 허용되지 않을 때면 짜증이 급격히 상승하기도 해. 그리고 이런 스트레스가 10년동안 축적된 거야.

하지만 이번에 신여권을 발급받으면서 드디어 이 표기를 수정할 기회가 생겼어. 그래서 기대에 부풀어 다시 여권과를 찾았지. 하지만 이번엔 “NA RA YOON”으로 발급받은 캐나다 워홀 비자가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거야… 정말 청천벽력 같았어. 결국 이후에 갱신한 운전면허증도, 신용카드도 모두 “NA RA YOON”으로 발급받아야 했고, 덕분에 앞으로 10년간 다시 고통받을 예정이야. 그래서 난 22살 윤나라의 저 대답을 후회해.

그런데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KBS의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에서 신동엽이 선택에 관해 한 명언을 우연히 보게 되었어. 예를 들어 한 식당에 갔을 때, 음식을 먹으면서 “저 식당에 갈걸.”이라고 후회해봤자, 저 식당에 갔을 때 내가 더 행복할지 불행할지 증명할 수 없잖아. 시간을 되돌려 저 식당에 갈 수 없으니까. 그래서 신동엽은 "걱정과 후회는 늘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인생에 정답은 없고, 그냥 선택만 있는 겁니다. 그리고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지고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라고 말하더라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 말이 “A는 A다.”라는 당연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쩌면 종종 우리가 이 당연한 이치를 잊고 사는 건 아닐까 생각해. 특히 요즘 세상엔 한 사람이 고려할 수 있는 정말 수많은 선택지가 있잖아. 그래서 혹시 내가 내린 선택이 최선이 아니지 않을까, 더 나은 선택지가 있지 않았을까 자주 되돌아보게 되곤 하는 것 같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저 말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좋든 싫든 앞으로도 우린 인생에서 수많은 선택을 내려야 하니까 말이야. 나도 10년 전 내 대답을 앞으로 10년간 다시 잘 감당해볼게. 😂

어른들께서 학생들에게 “공부만 할 때가 가장 좋을 때다.”라고 하셨던 말이 이젠 정말 십분 이해가 돼. 그때는 학교와 부모님이라는 지붕 아래 공부만 하면 됐지만, 이젠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내가 져야 하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책임감이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아. 그래도 난 그동안 내렸던 내 모든 선택이 정답이었다고 생각해보려고 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윤나라한테는 그 선택이 정답이었다고. 그 선택들이 지금의 꽤 멋진 나를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사실 우린 모르잖아, 당시엔 잘못된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혹은 미래에 “오히려 좋아”가 될 수도 있단 걸!

하지만 그래도 다들 여권을 새로 만들거나 할 때 띄어쓰기라는 복병을 만나게 되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 (별일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정말 신경 쓰이는 일이야 🙄)

아무튼 오늘은 내 개인전의 마지막 날이야.

실시간으로 이 편지를 보내고 또 전시장에 나가 봐야 해.

그동안 전시 준비도 하고, 출국 준비도 하고, 알바도 하고, 사람도 만나느라 정말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어.

캐나다로 떠나는 날은 3일도 채 남지 않은 수요일인데, 남은 시간 동안은 또 열심히 짐을 정리해야겠지.

다음 뉴스레터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보내게 되겠네.

마찬가지로, 30살의 나이에 낯선 땅으로 떠나 맨땅에 헤딩하는 지금의 내 선택이 최선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열심히 노력해서 정답으로 만들고 올게.

그럼 오늘 편지도 읽어 주어서 정말 고맙고, 내가 없는 한국을 잘 부탁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