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 스물다섯 번째 편지

안녕, 친구!

혹시 커피 좋아해? 나는 하루에 기본 세 잔 정도는 마실 정도로 좋아해. 핸드 드립 커피, 인스턴트 커피, 에스프레소 머신 커피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건 핸드 드립 커피야. ‘핸드’ 드립인 만큼 “손맛”이 있는 것 같거든. 핀란드 헬싱키의 일본 가정식 식당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카모메 식당>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방법이 나와. 어느 날 식당을 찾은 한 손님이 커피를 주문해 마시더니, “맛있네요. 그런데 더 맛있을 수 있어요.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요령을 가르쳐 드릴까요?”라고 물어. 그 방법이란 드리퍼에 소복이 담겨 있는 커피의 한가운데를 검지로 누르면서 “코피-루왁!”이라고 주문을 외는 거였지. 그렇게 내린 커피를 맛본 식당 주인 사치에는 깜짝 놀라. 맛이 한층 더 깊어졌기 때문이지. 이후 사치에도 같은 방법으로 커피를 내리는데, 이를 맛본 손님들이 맛있다며 칭찬해. 분명 같은 원두, 같은 물, 같은 드리퍼, 같은 주전자를 사용했음에도 맛이 달라진 이유는 뭘까? 코피 루왁(Kopi Luwak)은 사향고양이의 소화 기관을 통과한 커피 열매로 만드는 커피로,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맛있는 커피로 알려져 있어. 즉, 이 주문은 그만큼 맛있는 커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손맛을 더하는 과정인 거야.

지난 편지에 내가 캐나다에서 카페 알바를 하며 지냈다고 말했지? 내가 일했던 카페는 평화로운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로컬 에스프레소 바였는데, 주말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크게 붐비지 않는 조용한 곳이었기 때문에 주로 혼자 일을 했어. 대부분의 손님은 동네 주민이었기 때문에 단골이 많았는데, 금방 친해져서 나도 손님이 아닌 친구를 맞이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지. 일하기 시작한 첫날, 내게 혹시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어봐도 되냐고 한 백인 할아버지 손님이 있었어. 한국인이라고 답하자마자, “어머~ 나 어제 <미스터 션샤인> 21화 보고 펑펑 울었잖아~”라며 한국 드라마에 대한 사랑을 가감 없이 드러낸 제리는 큐레이터였지. 우린 미술과 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나이와 성별, 국적을 넘어선 좋은 친구가 되었어. 집에서 개발과 디자인 일을 하며 늘 비슷한 시간대에 아메리카노를 사러 오는 제프는 웃상이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고, 옆 가게인 그리스 음식점에서 일하는 알렉스와는 손님이 많은지, 피곤하지는 않은지 안부를 물으며 서로를 늘 격려했지. 이외에도 타티아나, 드미트리, 재즈, 데이비드, 카렌 등 이름과 직업은 물론, 자주 시키는 커피 종류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알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매일 같이 대화를 나누었던 손님들이 정말 많아. 그들은 내가 만든 커피가 특별히 더 맛있다고 했어. 아마 내 “마음”이라는 스폐셜 재료를 느꼈기 때문이겠지.

이렇게 열에 아홉은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물론 무례하고 기분 나쁜 손님들도 있었어. 기분 좋은 일만 생각해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기분 나쁜 일을 되새겨봤자 좋을 건 없으니깐 그들에 대한 말은 줄일게. 당연히 그들이 지불한 값에 응당한 서비스와 재화는 제공했지만, 어쩔 수 없이 레시피에 더해 내 “마음”은 담기지 않더라. 그렇게 그들은 조금은 덜 맛있는 커피를 마시게 되는 거지. 반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근간에 예의와 정겨움이 있는 사람은 매일 조금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조금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조금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조금 더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서 조금 더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 거야. 그래서 타인을 상냥하게 대하는 게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안하무인으로 구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나빴다가도 이내 안쓰러워져. 그들은 삶에서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야. 아마 다른 건 몰라도 평생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는 맛보지 못하겠지.

이십 대 초반에도 대학교를 다니면서 카페 알바를 했었어. 그때 배웠던 건 돈을 버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과 대체 불가한 ‘원 오브 어 카인드(One of a kind, 유일 무이한 사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지. 그리고 캐나다에서 오랜만에 다시 서비스업 일을 하면서는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되돌아보면서 사람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어. 나는 모든 사람이 서비스업에서 한 번쯤은 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상대방이고, 모든 일은 어쩌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니까 말이야. 많고 다양한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업은 무엇보다 사람 공부를 하기에 아주 적합하지. 내겐 무례한 사람들에게도 웃는 얼굴과 넓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겼어.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두들겨 넓게 펴 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려고. 친구는 평소 “마음”이 담긴 커피를 마시고 있어? 친구가 매일 조금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조금 더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조금 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기를 바라.

그럼 다음 한 주도 좋은 커피 향 같은 일주일 보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