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베이스캠프 찾기” - 스물세 번째 편지

안녕, 친구!

친구는 혹시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소개하는 문장이 있을까? 난 나를 “철학을 전공한 그래픽 아티스트”라고 소개해.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한 마디를 덧붙이기 시작했지. “꿈을 살고 있는 디지털 노마드”

“언젠가 우리는 모두 프리랜서가 될 것이다.”

오래전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언젠간 나만의 일을 하게 될 거란 걸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프리랜서 및 디지털 노마드라는 삶의 방식을 꿈꾸게 된 건 2019년부터였어. “언젠가 우리는 모두 프리랜서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좀더 본격적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을 그려보기 시작했거든. 이 문장과 함께, 최근 읽은 책 <시대예보:핵개인의 시대>에서의 ‘핵개인’이라는 말도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해. 책의 저자인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님이 ‘본인 삶의 주체적 의사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신 말이지. 이 책은 개인이 상호 네트워크의 힘으로 자립하는 새로운 시대가 올 것임을, 핵개인이 더 많아질 것임을 예견하고 있어. 그런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핵개인으로서의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해서 구상하고 실험해 보고 있어. 언젠가 프리랜서가 될 거라면, 기왕이면 일찍 시작하는 게 좋잖아?

“Not all those who wander are lost(방랑하는 모든 이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나의 첫 디지털 노마드 생활은 코로나가 한 차례 다시 심각해졌던 2020년 11월부터였어. 거제도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선발되어 숙소와 식비, 여행비를 지원받으며 한 달을 보내게 됐거든. 핀란드풍의 목조 주택에서 밤에는 별이 총총히 박힌 하늘을 바라보며 잠들고, 아침엔 말 그대로 새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는, 마치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시간을 보냈지. 다른 아티스트분들과 교류하며 목가적인 전원생활을 하는 것도 정말 꿈 같았지만, 내게 상상치도 못한 큰 놀라움을 안겨줬던 건 뭐니 뭐니 해도 파격적인 집값이었어. 서울에서 평생 산 나의 디폴트는 서울 집값에 맞춰져 있었는데, 당시 거제도의 신축 래미안 아파트가 오션뷰에 30평인데 월세가 3000에 30이라는 거야! 그 돈이면 서울에서 좁디좁은 고시텔도 못 구하는 거 알지? 그때는 더군다나 거리두기로 인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곳으로 이사를 와서 거주 환경만 더 좋아져도 삶의 질이 팟-!하고 튀어 오를 것 같다고 느꼈어. 그렇게 탈서울을 꿈꾸게 됐지. 그리고 그 뒤로 내가 살고 싶은 지역을 찾기 위해 여러 청년마을 프로그램에 지원해 선발되어 공주, 강릉, 아산에서도 숙식과 체험비 등을 지원받으며 한 달 이상 지내볼 수 있었어.

“한국만큼 한국인이 나태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인은 한국에서 살 때 가장 편하지. 하지만 나는 나를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들고 싶어. 특히 아티스트로서 창작 활동을 위해서는 영감이 필요하고, 이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고 불편한 환경에 내던지는 여행은 그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 그래서 지금까지 25개국을 여행하고, 또 캐나다 토론토에서 일년살이까지 하게 되었어. 한 번 사는 인생, 앞으로도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이 세상을 양껏 경험해 보고 싶어.

나만의 베이스캠프 찾기

토론토에 있는 동안, 강릉에서 만나게 된 친구 중 한 명이 토론토에서 짧게 경유를 하게 돼서 만났어. 공항에서 한 시간 반 남짓 대화를 하는데, 강릉에 아주심기를 앞둔 그 친구는 내게 언제 어딘가에 정착할 마음이 있는지 물었지. 난 거제에서부터 토론토까지 계속 떠돌아다니는 내 삶이 어느 순간부터 내 의지를 벗어나 마치 운명에 아로새겨진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했어. 그러자 친구는 말했지. “사람이 어느 한곳에 완전히 정착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하대. 1) 가족 2) 친구 3) 커뮤니티. 네가 지금 정착할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이 중 무언가 충족되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치 존재의 유무조차 몰랐던 매복 사랑니를 치과의사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모니터 속 엑스레이 사진으로 처음 발견한 듯한 정도의 놀라움을 느꼈어. 물론 서울엔 내 가족도 있고, 많은 친구와 내가 속한 다양한 커뮤니티가 있지만, 띠부띠부씰처럼 언제든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느낌이었거든. 그들과의 관계가 충분히 가깝거나 두텁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로 예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인이기 때문에 말이야. 하지만 이젠 내 인생에 한 번 붙으면 몇 톤짜리 트럭도 거뜬히 들어 올리는 강력한 접착제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걸 내가 원하고 있다고 느꼈어. ‘착 붙어서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관계를 찾기 위해 떠돌아다녔던 거구나.’ 깨달았지. 그래서 이젠 인생이라는 탐험을 하면서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베이스캠프”를 찾는 여행을 하게 될 것 같아.

친구에겐 친구만의 베이스캠프가 있어?

만약 아직 없다면, 우리 삶의 근거지가 될 곳을 찾는 이 여행을 멈추지 말자.

그럼 다가오는 한 주도 힘내서 맞이하기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