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세 번째 편지, 갑자기 뉴욕 취업(?) 🇺🇸

안녕, 친구! 한국은 벌써 벚꽃이 만개했다며?🌸 여기 토론토는 겨울왕국답게 눈이 많이 오다가

2023. 4. 5.

안녕, 친구!

한국은 벌써 벚꽃이 만개했다며?🌸 여기 토론토는 겨울왕국답게 눈이 많이 오다가, 눈이 안 오면 비가 오고, 비가 안 오면 강풍이 부는 시기를 지나, 이제야 조금씩 기온이 오르고 있어. 동네 이웃들의 마당에도 예쁜 꽃망울들이 맺히기 시작했지. 벌써 이곳에 온 지도 한 달이 지났어. 사실 그동안 구직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여행하러 온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니 하루빨리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어. 그렇다고 마음 편히 논 것도 아니어서 이도 저도 아닌 나날들이었지.

그동안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낸 이유

이렇게 나답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며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그런 걸 거야’ 하며 스스로 위로해보기도 하고, 우중충한 날씨 탓을 해보기도 했어. 친구들은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내 상태를 눈치 채고 있었더라구. 영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도 이미 만들어놓은 걸 업데이트만 하면 되는데 정말 너무 하기 싫더라. 내가 왜 이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취직에 대한 두려움이 내 생각보다 더 컸던 것 같아. 사실 난 본격적인 취업 준비라는 걸 해 본 적이 없거든.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교수님 추천으로 회사에 들어가게 됐고, 그다음에는 스카웃이 되어 이직, 그리고 쭉 한 회사에서만 일했어. 운이 참 좋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채용시장에 나 자신을 제대로 내던져본 경험이 없는 거지. 게다가 퇴사하고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채로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보낸 지도 어언 일 년 반. 그래도 그동안 알바와 대외활동 등을 그 누구 못지않게 많이, 진심으로 하면서 서류접수나 면접 등의 과정이 익숙하지 않은 것도 아닐뿐더러, 사실 글로든 말로든 나를 증명하는 일은 내가 가장 잘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음에도,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이 떼처럼 몰려와 시작할 수 있는 힘을 한껏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었어.

내게 찾아온 뜻밖의 기회, 잡아야 할까?

그러던 중에 아주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게 됐어. 다름 아닌, 세계의 수도인 뉴욕에서 일해 볼 기회. 자세한 건 마음의 결정을 내리면 말할 수 있을 테지만, 간략하게 말하자면, 메타버스 관련 사업을 하는 한국 회사에서 뉴욕 지사를 설립하는데, 그곳에서의 프로젝트 매니저 포지션으로 추천받았어. 한 가지 분야에 특출난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모든 분야에 두루 능력이 있는 제너럴리스트인 건 나의 가장 큰 장점이고, 그 부분에 대한 인정을 받아 얻게 된 기회야. 그래픽 디자이너이지만, 그동안 근무했던 두 회사에서 모두 각종 디자인뿐만 아니라, 콘텐츠 기획, 영상 편집, 소셜 미디어 관리, 한/영 번역 등 다양한 업무를 맡아서 했었거든. 아무튼 이번 기회는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뜻밖의 직무임은 물론, 뜻밖의 장소, 뜻밖의 업계이지만, 내가 잘 활용한다면 좋은 기회임은 분명해서 결정을 내리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또, 덕분에 그동안 미루고 있었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그리고 포트폴리오도 업데이트했지. 역시 일은 닥쳐야 하게 되는 법이라니까. 아무튼 앞으로의 내 인생에 영향을 크게 끼칠 만한 일이라서 심사숙고해야 하기에 나 자신에게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질문들을 던져 보고 있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에 대해서 말이야.

내 인생, 내 기준, 내 바람

나는 모든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믿어. 하지만 지레 겁먹고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중요한 건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명확하게 그려내는 거라고 생각해. 그러기 위해선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할 테지. 내가 작년에 썼던 일기를 다시 보니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어. “시간은 유한하고, 세상의 모든 탁월함과 좋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잘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내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남들의 기준이야 어떻든,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걸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후회 없는 “내 인생”이지. 반대로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나는 이를 고민도 없이 바로 적을 수 있었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자유가 없는 것. 내가 나 자신에게 자랑스럽지 않은 행동. 의미가 없는 일.” 그리고 내가 원하고 바라는 건 많지만, 요약하자면 “평생 창작하며 살면서 내 사람들을 사랑하고, 내가 속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될 것 같아. 이와 같은 삶을 뒷받침하기 위해 난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게 됐어.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

보통 워홀을 20대 초중반에 많이 가기 때문에 경력 없이도 할 수 있는 카페 알바나 레스토랑 서버, 혹은 매장직 등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사실 직종 상관없이 일을 할 수 있는 비자야.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 설정한 목표는 그동안의 커리어를 살려 그래픽 디자이너로 취직하는 것. 내가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건 순전히 전략적인 이유 때문이었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예술가가 되고 싶었거든. 친구도 알겠지만 예술계는 언제, 누가, 어떻게 성공할지에 대해 전혀 예측할 수 없잖아.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에게 있어서 후원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나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되기를 바라.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콘텐츠”가 아니라,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야. 돈을 위한 작품 활동을 하지 않기 위해, 그 누구에게도 영향받지 않고 내가 추구하는 예술을 하기 위해, 난 오히려 작품 외적으로 돈을 버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아티스트 윤나라’를 ‘그래픽 디자이너 윤나라’가 먹여 살리는 구조를 선택했지. 디자인도 일종의 기술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도 비교적 쉽게 일을 구할 수 있고,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주된 이유. 난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곳에서 살며 여행하며 지내고 싶거든. 그리고 원한다면 독립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이 직업의 아주 큰 장점이야. 나도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궁극적으로는 사업가가 되는 게 목표! 사실 초석은 이미 다져두었어. 그래서 여기에서 지내는 동안 한국에서 느꼈던 사회적 압박감 없이 이를 더 크게 발전시키는 게 내 계획이야.

내가 캐나다에서 얻어가고 싶은 것

종합해보면, 내가 이곳에서 얻어가고 싶은 건 크게 다섯 가지. 1) 다양한 경험 : 문화, 환경, 사람 등, 2) 생활비, 3) 내가 지금, 그리고 미래에 하고 싶은 걸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시간과 심적 여유, 4) 주체성과 독립심, 5)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의 나에 대한 이해. 이 다섯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