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 번째 편지, 친구랑 카톡하다가 운 이유

Safe Space (안전한 공간)

안녕, 친구!

잘 지내고 있어? 내 인스타그램만 보면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아. 하지만 사실은 기분이 조금 다운된 한 주를 보냈어. 난 인스타그램엔 내 잘난 모습, 기분 좋은 일들, 예쁜 것들만 올리고 싶더라. 멋진 장소에 간 나, 친구들과 행복한 나, 맛있을 뿐 아니라 예쁘기까지 한 음식을 먹는 나, 사진을 잘 찍는 나… 그러다가 종종 기분이 침체되거나 어렵고 힘든 일을 겪어도 그에 관해 한두 자 적다가 금세 지워버리곤 해. 그리고 예쁘고 의미 없는 사진과 미학적으로 아름답진 않아도 나에겐 의미 있는 사진이 있다면, 전자를 올리게 된달까. 아무튼 내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여주는 모습은 나의 아주 단편적인 모습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어.

그런데 며칠 전 친구 지환이가 카톡으로 내게 물어 왔어, 잘 지내냐고. 지환이는 내가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야. 그래서 인스타그램과 달리,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지. “첫 번째 주에는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바쁘기도 했고, 또 호스텔에 있으니까 사람도 많이 만났는데, 두 번째 주부터는 약간 소강상태인 것 같아. 생리통도 심했던 데다가, 이유 없이 짜증만 나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더라. 그래서 여기까지 와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밍기적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이 들어서 힘들었어. 또 아직 하우스메이트들과 친해질 시간도 갖지 못했고…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심심하고 외롭다는 감정을 느껴보는 것 같아. 늘 일을 만들어서 끊임없이 사부작거리는 편인데다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 이런 감정들이 꽤 낯설어.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여기에 그런 걸 느끼러 왔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더니 지환이가 이렇게 말해주더라고. “기본 생활 환경이 바뀌었는데 구직까지 동시에 하기 쉽지 않지. 생존 문제를 이렇게 단기간에 해결한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리고 아직 하우스메이트들과 어색한 게 당연하지. 그래도 한 지붕 아래 사니까 자연스럽게 친해질 기회가 있을 거야. 조바심 내지 말고, 캐나다 구경도 많이 해.” 어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그렇게 잘 해주는지… 나도 조바심 내지 말자고 스스로 계속 말하고 다독이는데, 그게 또 남이 얘기해주면 다르잖아. 덕분에 지환이와 카톡 하면서 눈물이 주룩주룩 😭

“Safe Space”라는 말 알아? ‘안전한 공간’이라는 뜻이고, 편견, 갈등, 비판 또는 잠재적으로 위협적인 행동, 아이디어 또는 대화가 없도록 의도된 장소를 의미해. 나한테는 지환이가 그런 존재인 것 같아. 우린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른 사람이라, 종종 우리 둘을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친한 친구인지 의아해하기도 해. 생김새부터 성격, 스타일, 취향 등 모두 다르거든. 일단 나는 철학과, 지환이는 수학과를 나왔다는 것만 말해도 사람들은 “아…” 하면서 알겠다는 표정을 짓지. 하지만 그렇게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 “지환이라면 그럴 수 있겠구나”, “나라라면 그럴 수 있겠구나”하고. 지환이와 있을 때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괜찮다고, 안전하다고 느껴.

예전에 <어쩌다 어른>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정혜신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 타인에게 “조.충.평.판”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걸 들은 뒤로, 이를 인간관계에서의 내 신조로 삼고 있어. “조.충.평.판”은 조언, 충고, 평가, 판단을 뜻하는데,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바른말’이 되지. 하지만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이 훨씬 많을 거야. 왜냐하면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고, 따라서 그 바른말은 자기 자신에게만 바른말일 테니까. 그래서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는 아주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찌를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인정하고 바라봐줄 때야 비로소 서로에게 서로가 ‘안전한 공간’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 나라레터도, 이 편지를 읽어주는 친구도 어느덧 내게 Safe Space가 된 것 같아. 불특정 다수가 나를 평가하고 판단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의 단편적인 모습만 올리는 인스타그램과 달리, 이 편지에서는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내 생각과 마음을 솔직하게 담아내려고 노력하거든. 나도 언젠간 친구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게 느껴진다면, 언제든 편안한 마음으로 어떤 이야기든 좋으니 내게도 이야기 들려줘.

아무튼 나 때문에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던 지환이는 자신도 미쳤다고 생각한다면서 다음 날 바로 토론토행 직항 비행기 티켓을 끊었지 뭐야 😂 원래 그렇게 충동적인 친구가 아닌데, 어쩌면 나랑 점점 닮아가는 걸 지도? 지금으로부터 6개월 뒤이긴 하지만, 벌써부터 지환이가 온다는 생각에 너무 힘이 나고 행복한 거 있지. 덕분에 조금 축 처졌던 어깨를 스스로 두들기고, 앞으로 지환이가 나를 보러 올 때까지 열심히 잘 지내고 있어 보려고! 😁

그럼 오늘 편지도 읽어줘서 고맙고, 한 주 동안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랄게.

안녕!